25년 전 백두산 천지에 섰을 때, 대륙의 바람 속에서 한 젊은 군주의 이름이 떠올랐다. 광개토대왕 담덕. 18세에 즉위한 그는 수세 대신 공세를 택했다. 백제를 압박해 한강 유역의 주도권을 확보했고, 후연을 요동에서 격파했다. 북방의 비려와 숙신을 복속시키며 국경을 안정시켰다. 이는 단순한 확장이 아닌 고구려 중심 질서의 재편이었다. 신라에 5만 병력을 파견해 왜의 침입을 물리친 결단은 장수왕 대의 안정으로 이어졌다. 39세의 이른 죽음에도 22년 치세는 고구려를 동북아 강국으로 도약시켰다. 정복은 무엇을 남겼는가. 1. 백두산에서 마주한 대륙의 꿈25년 전, 민족의 영산 백두산 정상에 섰던 그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천지의 푸른 물결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만주 대륙을 바라보며 묘한 전율에 휩싸였다. 바람 사이로 말발굽 소리가 스쳐 가는 듯했고, 황량하면서도 광활한 대지 위로 두 인물의 잔영이 어른거렸다. 어린 시절 만화 속 영웅이었던 남이 장군, 그리고 대학 시절 논문 속에서 치열하게 탐구했던 광개토대왕, 담덕(談德)이다. 그날 이후 광개토태왕은 내게 단순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었다. 이진희 선생의 고뇌 어린 비문 연구를 읽으며 사료의 치열함을 배웠고, 이
모노레일 사태 이후 남원에 남겨진 과제는 단순한 정리나 철거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은 멈춰 선 시설을 어떻게 다시 시민의 공간으로 되살릴 것인가, 실패의 흔적을 미래 가치로 전환할 수 있는가에 있다. 운행이 중단된 짚라인 탑승타워와 부대시설 역시 같은 맥락에서 냉정한 평가와 과감한 기능 전환이 요구된다. 이는 새로운 개발을 논하기에 앞서, 이미 존재하는 도시 자산을 어떻게 재해석하고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이며, 남원 도시정책의 성숙도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기고내용 요약] 모노레일 문제는 단순히 행정 판단의 정리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남겨진 시설을 어떻게 시민의 공간으로 되살릴 것인가에 있다. 도시 자산을 미래 가치로 전환하는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재 운행이 중단된 모노레일 구조물은 고가형 구조물에 형성된 입체 공간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지닌다. 이를 보행 중심의 공중 산책길로 전환한다면 시민에게는 휴식 공간이 되고 방문객에게는 특별한 체험 코스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앞서 제안한 바 있다. [기고] 모노레일 이후의 선택 ...‘남원 하늘길’ 열자 이제는 기존 짚라인 시설 역시 냉정한
모노레일 사태는 남원에 단순한 행정 실패 이상의 질문을 남겼다. 대법원 판결로 약 505억 원에 이르는 손해배상 책임이 확정되면서, 문제는 더 이상 법적 공방이 아닌 ‘이후의 선택’으로 옮겨갔다. 재운행이냐, 철거냐라는 이분법적 논쟁을 넘어 이제 남원이 답해야 할 것은 실패한 공공사업을 어떻게 시민의 자산으로 되돌릴 것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이다. 이미 세워진 구조물을 비용의 관점이 아닌 가치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할 때, 모노레일은 철거 대상이 아닌 전환 대상이 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사업보다는 실패를 딛고 도시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용기다.[기고내용 요약] 남원 모노레일 사태는 단순한 사업 실패를 넘어, 지방 행정의 판단과 공공재정 운영, 그리고 도시 미래 전략에 관한 중요한 질문을 남겼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으로 남원시는 약 505억 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었고, 그 결과는 시민의 재정 부담으로 현실화되었다. 그러나 판결은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다. 지금 남원 앞에 놓인 과제는 배상금 지급이라는 재정적 문제를 넘어, 이미 설치된 모노레일 시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라는 선택의 문제가 놓여졌다. 총 연장 약 2.44km에
요즘 단체대화방을 장식하는 단골 소재가 있다. 기획재정부 출신 인사의 과거 발언과 경력을 꺼내 “국가 재정도 다뤘던 사람이니 지역 예산도 잘 챙길 것”이라는 식의 기대를 부추기는 방식이다. 그러나 시민이 경계해야 할 것은 그 홍보가 은근히 깔고 있는 구조, 바로 기재부 카르텔식 프레임이다. 카르텔이란 무엇인가. 서로를 띄우고, 서로를 보증하며, 출신이 곧 능력인 것처럼 포장하는 폐쇄적 논리다. 정책과 성과가 아닌, 학연·경력·라인이 정당성을 대체하는 순간, 공공의 영역은 무너진다. 더 큰 문제는 그 프레임이 시민에게 아주 위험한 착각을 심어준다는 점이다. “기재부 출신이 일을 하면 예산을 더 많이 가져올 수 있다.” 이 말은 달콤하지만, 민주주의에겐 독이다. 예산은 ‘가져오는 돈’이 아니라, 국가의 기준과 절차 속에서 ‘필요에 따라 배분되는 공공 재원’이다. 그런데 기재부 출신을 앞세워 예산을 마치 개인의 능력, 더 노골적으로는 개인의 ‘라인’으로 가져오는 전리품처럼 말하는 순간, 그 지역은 발전이 아니라 예산 중독에 빠진다. 더구나 그런 포장은 늘 이쯤에서 결론으로 흐른다. “우리가 남원 예산을 살릴 사람이다.” 그러나 시민은 이제 묻는다. 그렇다면 공직의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순신 장군은 한 명의 장수를 넘어 위기 속에서 떠오르는 정신적 지도자의 상징으로 자리해 왔다. 한산도대첩을 비롯한 명량, 노량의 해전은 단순한 승리를 넘어 국가 운명을 바꾼 분기점이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리더십의 본보기로 회자되고 있다. 김준권 박사(빛나사역사연구소)는 최근 칼럼을 통해 한산도대첩이 지닌 의미를 재조명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을 다룬 문학과 영화, 역사 서술의 흐름을 짚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길을 한산도의 푸른 바다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70년대 학교 운동장마다 세워졌던 이순신 동상은 세대를 관통하며 국가관을 형성한 상징물이었다. 그에게만 유일하게 붙는 ‘성웅(聖雄)’이라는 칭호는 전승 기록뿐 아니라 원칙과 겸손, 고결한 인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가된다. 이순신 장군을 다룬 대중문화도 한국사에서 중요한 흐름을 만들었다. 영화 <성웅 이순신>,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그리고 영화 <명량>, <한산>, <노량>으로 이어지는 작품들은 ‘신화적 영웅’을 넘어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한산도대첩은 전략과 지략, 용기가
14일 오전, 한 통의 문자가 날아들었다. “조국과 함께 만나는…” 정치의 언어는 간결해야 하지만, 이 문장은 남원 정치의 현주소를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름은 앞에 섰고,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 ‘조국’이라는 상징 뒤에 숨은 정치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문제는 그 상징이 남원의 시간을 갉아먹고 있다는 점이다. 남원 정치가 또다시 익숙한 이름과 낡은 방식 앞에서 제자리를 맴돈다.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부 전·현직 민주당계 인사들이 특정 인물의 상징에 몸을 기대 출마 채비에 나섰다. 간판은 바뀌었을지 몰라도, 정치의 내용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새로운 비전은 없고, 새로운 인물도 없다. 남은 것은 정치적 상징에 대한 편승과 과거 이력의 재활용뿐이다. 정치는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남원 정치판에서는 정책보다 이름이 앞서고, 비전보다 간판이 먼저 소비된다. 특정 상징이 만능 열쇠처럼 선거판을 여는 순간, 남원의 현실과 미래는 늘 뒷전으로 밀려난다. 문제는 더 근본적이다. 이 정치에는 위기의식이 없다. 남원은 이미 고령화의 정점에 서 있다. 청년은 떠났고, 아이 울음소리는 줄었다. 산업은 늙었고, 행정은 속
오는 6월 치러질 남원시장과 시·도의원 선거를 앞두고, 다수의 전·현직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이 ‘조국’이라는 정치적 상징성과 파급력을 등에 업고 출마를 준비하면서 지역 정치권의 열기가 빠르게 달아오르고 있다. 기존 정치 지형에 변화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며, 선거 구도는 조기 과열 양상으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출마를 준비 중인 인사들은 대체로 중장년층으로, 행정·정치·사회 전반에서 일정한 경력을 쌓아온 세대로 분류된다. 지역사회에서는 이들이 삶의 굴곡과 사회적 경험을 통해 다양한 국면을 체득한 인물들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일부는 지방의회나 당직 경험을 거치며 정책과 조직 운영에 대한 이해도를 갖췄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시민들의 시선은 마냥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새로운 비전보다 인물과 간판에 기대려는 구도 아니냐”는 비판이 적지 않고, 특정 정치인의 이름값에 편승하는 방식이 과연 지역 정치의 변화를 이끌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특히 세대교체와 정치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상황에서 기존 정치권 인사들의 재등장이 시대적 요구와 맞닿아 있는지를 두고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지역 정가의 한 관계자는 “조
이도령의 남원 방문 소식이 전해졌지만, 지역 정가의 반응은 기대와 거리가 멀다. 이도령은 남원에서 열리는 변사또의 출판 잔치에 얼굴을 비출 예정으로 알려졌다. 변사또는 과거 관아 요직을 지낸 인물로 다가오는 6·3 지방선거에서 남원 수령 자리를 노리는 후보로 거론된다. 그러나 현장의 공기는 차갑다. 향교 인사들과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언제쩍 도령 이야기인가”라는 반문이 먼저 나온다. 변사또의 재등장이 판세를 뒤흔들 변수라기보다는 한때의 체면과 이름값에 기대는 ‘찻잔 속 소동’에 그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같은 인식의 배경에는 남원 고을의 정치 지형이 자리하고 있다. 지역에서는 현 집권 세력에 대한 국정 신뢰가 여전히 높다는 점이 거론된다. 이미 굳건히 형성된 민심 위에서 이도령이 이끄는 새 무리가 뚜렷한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도령 일파의 정체성을 두고도 의문은 이어진다. 기존 세력과 무엇이 다른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기존 공천 탈락자 배제’를 내세우며 새 인물 등용을 강조하고 있지만, 고을 안팎에서는 “도포만 갈아입은 얼굴들”이라는 냉소적인 평가도 동시에 흘러나온다. 전북 일대 선거 지형은 이미 윤곽을 드러
남원시에서 불법 개발행위가 경찰에 고발된 이후에도 중장비가 다시 현장에 투입됐다는 주민 제보는 우연이 아니다. 중장비 멈추지 않았다…고발 무력화된 남원시 이는 단속의 실패가 아닌, 행정 판단 자체가 잘못 설계됐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위법을 차단해야 할 행정이 오히려 불법의 연장선이 되고 있다면, 문제의 본질은 개인이 아니라 행정 시스템에 있다. 남원에서 반복되고 있는 토사 불법 반출 논란은 단순한 현장 일탈이 아니다. 불법 전력이 있는 대상에게 허가 범위를 벗어난 농지에 ‘농지개량신고’라는 외피를 씌워 조건부 승인을 내주고, 기존 허가지에서 반출된 토사를 다시 이전·사용하도록 한 행정 구조는 과연 관리였는가, 아니면 불법에 대한 묵인과 동조였는가. 법과 원칙으로 차단해야 할 위법이 행정 절차를 거치며 되레 연장되고 있다면, 이는 단순한 판단 착오를 넘어 공공 행정의 신뢰를 스스로 허무는 선택에 가깝다. 행정은 “조건을 달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조건의 유무가 아니다. 이미 위법 논란이 제기되고 고발까지 이어진 토사와 행위를 다시 허가의 차원으로 인정한 순간 행정의 기준은 무너졌다. 조건부라는 이름 아래 허가의 경계가 느슨해졌고, 그 결과 불법은 멈추지
고대 동북아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 이른바 ‘살수대첩’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빛나사역사연구소 김준권 박사는 최근 발표한 글을 통해 살수대첩을 비롯해 귀주대첩, 한산도대첩을 거론하며 “이 승리들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 민족의 자존과 정체성을 일깨운 위대한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김 박사는 “살수대첩은 고구려와 수나라의 충돌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장면”이라며 “전쟁을 정치의 연장으로만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민족의 명운이 걸린 격돌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대륙을 제패한 수나라의 야심과 이를 막아낸 고구려의 자주적 세계관을 대비시키며, “천하관의 충돌 속에서 고구려는 끝내 무릎을 꿇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을지문덕 장군의 지략을 높이 평가했다. 김 박사는 “을지문덕은 평양 인근까지 적을 유인한 뒤 살수에서 결정적 반격을 가했다”며 “113만에 달한 수나라의 대군 중 살수만 건넌 30만 5천 명 가운데 생환자는 2,700명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승리는 단순한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인내와 전략이 빚어낸 전쟁 예술의 극치였다”고 덧붙였다. 또한 살수대첩의 배경에는 이름 없는 백성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