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암살이 있었다. 카인은 돌을 들어 아우 아벨의 머리를 내려쳤다."
인류의 기록이 시작된 창세기의 첫 페이지는 핏빛으로 물들어 있다. 신의 은총을 독점한 아우를 향한 형의 질투는 인류 최초의 살인, 즉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암살을 잉태했다.
타인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거나 비수를 꽂는 행위의 이면에는 저마다의 처절한 사연이 숨 쉬고 있겠지만, 그 칼끝이 향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은 언제나 '탈취(奪取)'다. 대상이 소유한 생명, 그리고 그 생명이 쥐고 있는 무형의 권력을 빼앗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권력의 깎아지른 정점에 서 있는 국가원수는, 역사의 매 순간 가장 매혹적이고도 위태로운 암살의 표적이 되어왔다.
이 글은 한 자루의 단검과 한 발의 총성이 어떻게 제국의 운명을 가르고 시대의 물줄기를 틀어놓았는지, 저 짙은 어둠 속에서 작동해 온 '암살'이라는 극단적 정치 행위의 맨얼굴을 들여다보는 작업이다.
어둠 속의 이단자들: 하시신과 암살의 본질
프랑스어 ‘assassina’와 영어 ‘assassination’이라는 단어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1세기 말 페르시아의 황량한 산악 지대에 가닿는다. 그곳에서 하산 사바바는 소수의 정예 부대를 규합해 '아사신(Assassin)'이라는 비밀결사대를 조직했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환각제 '하시시(hashish)'는 단순한 마약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의 공포를 마비시키고, 오직 표적의 숨통을 끊어내겠다는 광신적인 목적의식만을 남기는 치명적인 성수(聖水)였다. 12세기 십자군을 통해 서방 세계에 전해진 이들의 악명은, 곧 암살이라는 행위가 가진 은밀하고도 파괴적인 속성을 완벽하게 대변하는 이름이 되었다.
정치적 무대로 옮겨온 암살은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정치적 파장을 일으키는 비합법적 살해 행위'로 정의된다. 전면전이 요구하는 막대한 피와 자원의 소모 없이, 단 한 사람의 심장을 멈추게 함으로써 거대한 권력의 탑을 붕괴시키는 효율성. 바로 이 점 때문에 좌와 우,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막론하고 수많은 역사 속 행위자들이 이 금지된 독잔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나 한 개인이 아닌 거대한 조직과 분산된 권력 구조 속에서, 개인의 살의(殺意)는 종종 궁정 혁명이나 쿠데타의 거대한 파도와 뒤섞이며 그 경계마저 모호해지곤 한다.
피로 물든 옥좌, 그리고 엇갈린 신념들
역사의 무대 뒤편에서 암살자들의 손을 움직였던 보이지 않는 실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피를 묻힌 동기를 찬찬히 살펴보면,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한 욕망부터 숭고함을 가장한 광기까지 다양한 군상을 마주하게 된다.
첫째, 권력을 향한 맹목적인 갈증이다. 옥좌의 주인을 죽인 자는 필연적으로 그 비어버린 옥좌에 매혹된다. 대의명분이라는 화려한 외투를 걸치고 있을지라도, 핏물 고인 권력의 공백 앞에서 무심할 수 있는 암살자는 드물다. 위험을 무릅쓰고 최고의 권력자를 베어버린 칼날은, 결국 주인을 잃고 헤매는 권력을 자신의 손아귀에 쥐기 위한 가장 잔혹한 도구에 불과할 때가 많다.
둘째, '폭군 살해(Tyrannicide)'라는 이름의 위험한 정의(正義)다. "이 사람에게 더 이상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비장한 우국충정은 암살에 숭고한 아우라를 부여한다. 신의 법을 어긴 독재자를 처단하는 것은 살인이 아니라 국가를 구원하는 혁명이라는 믿음. 서구의 오랜 역사 속에서 폭군 살해가 하나의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두 번째 유형의 암살자들은 스스로를 살인귀가 아닌 단죄자로 여기며, 역사의 제단에 표적의 피를 기꺼이 바친다.
셋째, 부러지지 않는 신념의 충돌이다. 때로는 권력욕이나 국가안위보다 더 뜨거운, 종교적·이념적 신념이 방아쇠를 당긴다.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 암살,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 인도의 간디 모자(母子), 오스트리아의 페르디난트 황태자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가슴에 꽂힌 총탄은 단순한 금속 덩어리가 아니라, 타협을 모르는 맹렬한 신념들이 충돌하며 빚어낸 역사의 파편들이었다.
제국의 체스판, 그리고 지워진 얼굴들
개인과 개인, 혹은 개인과 국가 간의 비극을 넘어, 암살은 종종 세계의 패권을 쥔 강대국들의 차가운 외교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넷째, 외교적 동기에 의한 무자비한 제거다. 냉전의 시대, 미국과 구소련을 비롯한 제국주의적 열강들에게 체스판 위의 말에 불과한 군소 국가의 지도자들은 언제든 제거될 수 있는 소모품이었다. 자국의 이익에 반기를 드는 순간,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나 도미니카의 트루히요처럼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에 의해 무대 밖으로 영원히 추방당했다. 이 경우 암살은 주권 침해라는 가장 폭력적인 형태의 외교 언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철저히 익명화되는 암살자의 초상이다.
암살이라는 비극의 무대에는 반드시 두 명의 배우가 필요하다. 찌르는 자와 찔리는 자. 그러나 국가원수 암살이라는 거대한 서사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찔린 자, 즉 권력자에게 쏠린다. 총을 겨눈 사람의 개인적인 동기나 삶의 궤적은 표적이 지녔던 정치적 무게에 짓눌려 하찮은 것으로 치부된다. 암살자는 거대한 역사의 기계를 멈추게 한 하나의 부속품으로 소비될 뿐, 결국 남는 것은 '국가원수'라는 묵직한 표적의 그림자뿐이다.
지워지지 않는 역사의 핏자국
카인의 손에 들려 있던 투박한 돌멩이는 수천 년의 세월을 거치며 정교한 저격총과 치명적인 독극물로 진화해 왔다. 암살의 형태와 도구는 시대에 따라 모습을 달리했지만, 타인의 생명을 끊어내어 역사의 궤도를 강제로 비틀어 버리려는 그 서늘하고도 오만한 본질만큼은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부패한 독재자를 단죄하기 위해, 맹렬한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혹은 제국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번뜩였던 수많은 칼날과 총성은 분명 역사의 물줄기를 극적으로 바꿔놓았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피로 쓰인 역사는 결국 또 다른 피를 부른다는 사실이다. 암살이 일시적으로 권력의 주인을 바꿀 수는 있을지언정, 인간 내면에 자리한 탐욕과 투쟁의 본질까지 구원하지는 못한다.
오늘날에도 역사의 이면에는 여전히 '하시신'의 환각에 취해 단 한 번의 파괴적인 행위로 세상을 바꾸려는 어두운 그림자들이 서성이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정당한 혁명의 불꽃으로 미화되든, 권력을 향한 비열한 살인극으로 규정되든, 암살이라는 서늘한 칼날이 남긴 핏자국은 인류의 궤적 위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아 있다.
.빛나사역사연구소 소장
김준권 문학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