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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랑마을 억새집, 김채옥 할머니

"억새처럼 살아온 억척같은 세월"

 

18살에 시집와, 22살에 남편 세상 등져

3녀 1남 중 셋째로 태어난 김채옥 할머니(75)가 지금 살고 있는 팔랑마을로 시집을 온 것은 꽃다운 18세였다. 친정인 산내면 원천마을에서 팔랑마을로 꽃가마를 타고 시집올 때만 하더라도 남편이 그리 일찍 세상을 떠날지 꿈에도 몰랐다. 두 살 연상이었던 남편은 할머니가 22살이 되던 해 아들 하나만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고 만다. 갑자기 팔이 아파서 복용했던 약이 부작용이 나 병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고 사망한 것이다.

 

남원시내에서 갖은 고생, 다시 팔랑마을로

팔랑마을에서 홀로 아들을 키우다가, 아들이 산내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에 남원으로 이사를 간다. 학교에 잘 다니는 줄 알았던 아들이 마을 형들의 꼬임에 넘어가 거의 대부분을 결석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팔랑마을을 떠나게 된다. 첫 일터가 누에공장이었는데, 월 4만원을 받고 10년간 식모처럼 살았다. 이후 직접 식당을 차려 억척같이 돈을 벌었다. 쉬지 않고 일한 탓인지, 결국 탈이 났다. 두 차례의 담석 수술 후, 신접살이를 했던 팔랑 마을이 다시 그리워졌다. 떠났던 마을로 돌아오기 위해 2005년에 우선 밭을 사서 고사리부터 심었다. 그로부터 2년 후 단층 슬라브집을 지어 꿈에 그리던 팔랑 마을로 다시 돌아왔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억새집

그러다 편한 현대식 가옥을 마다하고 지금 살고 있는 억새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 것은 시 작은아버지가 한 때 살았던 옛집을 구입한 것이 계기가 됐다. 쓰러져가던 구식 한옥을 뼈대만 남긴 채, 찹쌀과 느릅나무 껍질 삶은 물을 섞은 황토로 벽을 바르고, ‘억새’를 이어 지붕에 얹었다. 처음엔 지붕 재료로 무엇을 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옛날 식 ‘억새’가 좋겠다고 단순히 생각한 것이 이렇게까지 유명세를 탈 줄 몰랐다고 한다. 열여덟에 시집와 살았던 4칸짜리 억새집이 할머니 마음속 깊은 곳에 장롱 속 이불처럼 따뜻하게 남아 있었던 건 아닐까?

 

일흔 다섯 살의 청춘

54세 되던 해에 26전 27기로 자동차 면허증을 따고, 컴퓨터를 배우기 위해 남원까지 다닌 적도 있다는 할머니. 뭐든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찬 일흔 다섯의 청춘 김채옥 할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 3시에 일어나 30분간 염불하고, 4시에 닭에게 먹이주고, 5시면 어김없이 산에 간다. 단 한 번도 일을 무서워 해 본 적이 없다는 할머니는 굽은 허리에도 7천 평 고사리 밭에서 고사리 500근을 거뜬히 수확할 정도로 여전히 건강하다. 이제부터라도 조금이나마 베풀면서 여생을 살고 싶다는 할머니는 직접 담은 막걸리를 길손들에게 한 잔씩 따라 주시곤, 또 일터로 쓰윽 사라진다.

사진/글=남원시 홍보전산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