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권 칼럼] 광한루 처마 끝에 걸린 두 얼굴의 역사, 그리고 남원의 기억
스물일곱 가지 찬에 담긴 남도의 풍류도시 남원
광한루의 그림자, 그리고 명재상 황희 숨겨진 민낯
불완전함 속에서 피어나는 찬란한 생명력...광한루여 무궁하라
시간의 지층 아래로 가라앉은 청춘의 풍경과, 흠집 난 역사가 뿜어내는 찬란한 생명력에 대하여 기억의 갈피를 조심스레 더듬어 오르면, 청춘의 한 페이지에 짙게 인화된 남원의 풍경이 아련한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릅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1985년, 대학 2학년 시절의 봄, 다산 정약용의 웅숭깊은 숨결이 배어 있는 강진의 초당을 지나, 고산 윤선도의 꼿꼿한 자취가 남은 고택을 어루만지고, 해남 대흥사의 장엄한 산세를 마음에 담은 뒤 넘어온 남원은 우리에게 단순한 기착지가 아니었습니다. 평생토록 낡은 사료의 먼지를 마시며 역사의 궤적을 좇게 될 젊은 학도들에게, 그 시절의 고적 답사는 학문의 단단한 뼈대를 세우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벼리는 뜨거운 통과의례와도 같았습니다. 지금처럼 광한루 곁에 매끈하게 포장된 번듯한 주차장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멀찍이 차를 대고 굽이치는 강둑을 따라 걷던 그 비포장 길 위에는, 청춘 특유의 낭만과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치기 어린 호기가 툭툭 불거지는 흙먼지처럼 일고 있었습니다. 강둑길에서 마주한 날것의 생명력과 청춘의 해학 발해사를 전공하셨던 은사님의 넉넉한 걸음을 필두로 선후배들과 어울려 걷던 그 강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