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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성호 (50·용산구새마을금고 상무)
소주, 맥주, 막걸리...
나에겐 많은 친구들이 있지만 어느새 중년이 되어버린 나를 변함없이 지켜주는 친구가 있다. 바로 막걸리다. 남원 막걸리. 잘 있겠지?
내가 막걸리를 처음 만나게 된 건 시골집 마루였던 것 같다.
그때 난 술이란 단어에 대해 잘 몰랐다. 아버지 친구분들이 오시면 항상 막걸리가 특별손님으로 와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무심히 지나쳤는데 막걸리가 함께한 자리는 항상 기분이 좋아 보였다.
왜 그럴까 하는 궁금증이 커갔는데, 몇 해가 지나고 드디어 막걸리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 농번기 때 들에 나간 부모님께서 새참 심부름을 시킨거야.
동네 구판장에서 막걸리를 주전자에 한가득 담아 논두렁을 걸어가는데 그만 한 모금 꼴깍 한 것이 막걸리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됐다.
그 후로 난 심부름하는 것이 좋았다.
막걸리를 다시 만난 건 중학교 졸업때인 것 같다.
졸업 기념으로 동네 친구들과 뒷산에서 야영을 했다.
텐트도 준비하고, 캠프파이어도 준비하고, 밥도 해먹고 즐겁게 놀았다. 근데 몇몇 친구들이 막걸리를 초대했다. 어른들이 없는 곳에서 한번 마셔보자는 것인데 정말 즐거웠다.
난 그때 알았다. 아버지와 친구분들이 왜 막걸리와 함께 있으면 즐거워 하시는지를.
내가 막걸리 매력에 푹 빠지게 된 건 고등학교 때인 것 같다.
수업이 끝나고 야간자율학습 시간이 되면 우린 가끔 몰래 땡땡이를 쳤다.
그곳은 시외버스터미널 근처 우리가 나름대로 개발한 허름한 부침개집 이었다. 공부 스트레스가 많지도 않았을 텐데 친구들은 그냥 새로운 일탈이 즐거웠었던 것 같다.
할머니가 노릇하게 부쳐주신 시금치전과 그냥 조그만 국그릇에 따라 먹는 막걸리. 그때는 무슨 맛인지 깊게는 몰랐지만 배고픔을 줄이고 알딸딸해지는 감각이 마냥 좋았던 것 같다.
그리고 친구들과 쌓는 의∼리.
막걸리는 우릴 마치 어른이 된 것처럼 세상에 두려울 게 없는 존재로 만들어 주곤 했다.
지금은 추억의 장소가 없어져서 서운하지만, 그때의 멋진 기억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가다.
요즘도 가끔 남원에 가면 형님과 함께 막걸리를 만나곤 한다. 그때마다 옛 추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여기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막걸리 맛은 역시 남원이 최고다.
막걸리한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희미해져 가는 고향의 추억을 함께할 수 있으니까.
그때의 막걸리도 그립고 친구들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