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남 함양군 마천면, 화창한 봄볕이 지리산 자락을 물들인 4월 19일, 남원문화대학 지리산문화해설사 양성과정 제4회차 수강생 18명이 역사문화 강사 조용섭 선생과 함께 지리산 사찰 순례에 나섰다.
이번 답사는 단순 견학을 넘어 불교 이상향인 ‘극락 정토(極樂淨土)’의 의미를 깊이 음미하고, 그 심상을 가슴에 새기는 시간이 됐다.
조용섭 강사는 순천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한 뒤 지리산권 향토사 연구와 불교사 강의를 활발히 이어오고 있다. 현재 지리산권 마실 협동조합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한국불교 역사의 현장, 지리산’ 등 다수 프로그램을 기획·진행해 왔다. 그는 “지리산의 사찰은 자연과 함께 빚어낸 신성한 수행 공간이자, 현세에서 극락의 정취를 맛볼 수 있는 성소”라며 답사단의 이해를 도왔다.
벽송사
경남 함양군 마천면 광점길에 위치한 벽송사는 ‘푸른 소나무처럼 척박한 곳에서도 불법을 전하라’는 의미로 17세기 중엽 재건된 사찰이다. 부용 영관선사는 이곳에서 아미타불 염송으로 극락왕생을 기원했으며, 그의 염불 소리는 지리산 골짜기에 울려 퍼졌다고 전해진다.
조선 중기 서산대사 휴정도 임진왜란 전후 벽송사를 찾아 승군 조직을 논의하고 ‘호국염불’의 흔적을 남겼다. 대웅전 앞 소나무에 소원을 매다는 ‘소원의 바랑’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벽송사는 고승의 수행과 지역 신앙이 함께 숨 쉬는 성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안국사
이어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위치한 안국사로 향했다. 신라 태종무열왕 3년(656)에 창건된 이래 1,300여 년의 세월을 견뎌온 사찰이다. 통일신라 말~고려 초에 조성된 팔각원당형 부도탑은, 안국사를 중건하고 불교 보급에 앞장선 은광대화상을 기리는 상징이다.
연꽃 문양이 섬세하게 새겨진 기단 위에 몸돌과 지붕돌이 얹힌 부도 앞에서 답사단은 장엄함을 마주하며, 석탑에 새겨질 글귀를 찾아내며, 은광대화상의 얼을 찾아 보는 시간을 가졌다.
금대암
안국사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이름 그대로 ‘황금의 터’라는 뜻을 지닌 금대암이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눈앞에 지리산 천왕봉을 친견할 수 있는 위치’로 불리는 이곳은, 자연 암벽과 숲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저절로 불심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벽송사의 선원(禪院) 역할을 하며 참선이 활발했던 이곳 풍경은 마치 땅 위에 펼쳐진 극락 정토를 연상케 한다.

금대암 대웅전 뒤 너른 바위에 모두 올라, 스님의 '맨몸 눈 속 선정(禪定)의 기도'를 하셨다는 시간을 잠시 상상하며, 모두 함께 잠시 명상의 시간을 가지기도 하였다.

백장사
마지막 종착지는 선종 대가 백장선사를 기리는 작은 도량 백장사였다. 깊은 산세 속에 소박히 들어앉은 이곳은, 규모는 작지만 선맥(禪脈)을 잇는 엄숙한 기운이 감돈다.
지친 나그네와 중생들에게 석간수를 조건없이 낸다. 건강을 발원하는 시간과 아늑한 공간을 선사하는 넓은 잔디밭이 인상적인 공간이다.

조용섭 선생은 “극락 정토는, 어쩌면 오늘 이 찰나의 봄볕을 닮았을지 모른다. 저 먼 이상향이 아니라, 올바른 수행과 깨달음을 통해 이곳에서 체험되는 마음의 안식처”라며, “이 순간의 거짓 없고 꾸밈없는 마음과 이 기행의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정토’가 아닐까”라고 말했다.
순례를 마친 수강생들은 “사찰마다 다른 전통과 색채가 있었지만, 모두가 공통된 평온을 전해주었다”며, “지리산 사찰들에서 체험한 극락 정토의 메시지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진정한 ‘정토’를 느낀 듯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지리산, 그 품속의 사찰들은 오늘도 중생의 발걸음을 맞이하며 ‘극락 정토’로 가는 길을 은은히 비추고 있다.
“극락정토, 피안의 세계에서 일상의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지리산 기행 코스 개발은, 새로운 감성 체험 관광상품으로 개발한다면, 감히 최고라 불러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 장기수 수강생
한편, 지리산문화대학은 최진영 학장이 이끌고 있으며, 이완구 부학장과 양경님 총괄이 함께 운영을 맡고 있다. 시민들의 지역 문화 이해와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생활밀착형 인문교육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답사와 강좌를 통해 ‘삶 속의 문화’를 실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