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시절 나라와 고을 사람들의 정체성을 가졌던 문화는 말살되고 있었다. 수천 년 동안 이어져왔던 남원 사람들의 문화유전자도 진화를 멈추고 있던 그 시절 남원에 권번이 생겼고, 그 속에 남원문화의 유전자가 들여졌다. 남원문화의 집성체였던 그것은 권번 소리청에 융합된 대모주와 청포묵과 권번탕의 삼합이었다. 일제 강점기 남원의 동편제는 권번 소리청에 들어 삼합을 내고 춘향정신으로 항일운동에 나섰다. 남원권번에 있었던 천리손님도 부른다는 삼합은 남원고을의 역사에서 이어져온 천년의 맛을 가진 문화였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청포묵은 정유재란 때 노약자와 어린이를 살려낸 구명음식에서 시작되었고 대모주는 지금의 고샘인 대모샘의 물로 고려군의 갈증을 풀어주었다는 남원막걸리가 탄생된 술이었으며 권번탕은 삼한시대 달궁의 구황음식 추풀탕이 진화해온 추어탕의 이야기를 가졌으니 권번 삼합문화가 그것이었다. 조선이 나라를 빼앗겼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다. 제법 큰 고을마다의 교방은 해체되었고 그곳에 몸을 담으면서 고을의 문화적 특성을 잘 표현해 내던 예능인들은 갈 곳을 잃었다. 일제는 교방의 후신으로 권번을 설치했다. 이른바 기생조합이었다. 남원의 권번은 광한루에 자리했
남원은 역사적으로 군사적 요충지일 뿐만 아니라 풍수적으로도 길지에 속하여 왔다. 남원이라는 지명과 신라 때 소경의 위치에 있었음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한 문화의 흔적은 지금도 여러 곳에 남아있다. 남원의 주산은 백공산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주인 역할을 많이 한 것은 교룡산이다. 그곳에 성을 쌓고 남원을 방비해온 지난날의 이야기 속에 당시 사람들의 흔적이 많이 보인 것을 생각해보면 실제적으로 활용된 주산으로서의 존재성이 크다 할 것이다. 교룡산의 주인은 교룡이다. 교룡은 때를 기다리는 전설의 용이다. 교룡산의 두 봉우리는 용의 눈이다. 그 교룡산 건너편에 풍악산이 있고 그곳에 마애불이 있다. 그 마애불은 이렇다 할 이야기 하나 가지지 못한 채 사람들의 대중적인 눈을 피해 자리해오고 있다. 누구라도 처음 본 순간 무언가 모를 것에 끌려 눈을 떼지 못할 만큼 아름답고 조형미가 넘쳐난다. 그곳은 남원 신계리 마애불상이다. 그 불상은 왜 길손마저 들기 어려운 이곳에 자리했을까? 신계리 마애불 자리는 교룡산에 사는 교룡의 여의주가 있는 곳이다. 교룡은 승천의 때를 기다리는 용이다. 교룡이 승천하면 수많은 물고기를 거느리며 하늘을 난다. 교룡의 상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