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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불입상과 남원문화원 김현식 사무국장 |
남원에서 고려시대 11세기 중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입상이 발견돼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남원문화원(원장 김찬기)에 따르면 지난 17일 전북도 문화원연합회가 추진하는 전북지역 돌문화 조사활동 중 남원문화원이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고려시대 11세기 중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불입상을 발견했다고 25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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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발견된 석불입상은 남원시 대산면 신계리 월계마을과 남원 상록골프장 사이 부처골로 불리는 논가에서 보물 제43호인 만복사지 석조여래입상 규모의 큰 석불이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남원문화원 김현식 사무국장은 "그동안 마을사람들은 석불입상을 미륵으로 생각하고 소원을 기원하는 등 잘 모셔왔다"고 말했다.
남원문화원에 따르면 발견 당시 석불입상은 목과 불두가 결실되었고 불신만 남아 있었으며, 깨진 광배가 불신 위에 올려진 상태였고 석불입상은 주형거신광으로 광배와 불신이 일석으로 된 석조여래입상이며, 크기는 110cm, 어깨 폭 51cm, 깨진 두광의 크기는 높이 60cm, 폭 81cm로 광배가 온전할 경우 석불입상의 크기는 약 1.7m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특히 불두가 결실되어 상호를 파악하기 어렵고 불신 좌측 허리 아래로 불신과 일석으로 치석된 광배의 일부가 남아 있고 두광과 신광 외연에는 화염문이 조식돼 있으며, 어깨의 선은 둥글고 부드럽게 상완부와 연결되어 있고 가슴의 양감과 허리곡선은 표현되지 않았다. 반면 특이하게 하복부를 앞으로 내밀어 관능성을 유독 강조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 석불입상은 대의는 통견으로 어깨에서부터 층단을 이루며 흘러내려 가슴 아래로 V자 주름을 이루고 허리부분은 Y형으로 갈라졌으며, 밀착된 양쪽 다리에서 다시 U자형으로 흘러 끝단에서 부드러운 곡선으로 단정히 마감됐다.
또한 오른손은 가슴 붙이고 왼손에는 약기인 또는 연꽃 혹은 연봉을 쥐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마멸이 심해 정확한 지물을 추정하기는 어려웠지만 돌출된 상태로 보아 연꽃 또는 연봉을 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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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은 별조하여 끼울 수 있도록 하였는데 현재 결실된 상태다. 석불입상 아래에 넓이 가로·세로 1m, 두께 약 29cm의 평면 방형대좌가 자리하고 있는데 하나의 돌을 치석해 2단으로 구상됐다.
하단석은 방형이며, 면석 가운데에 탱주를 조식하고 양쪽으로 복주머니형 안상 2구씩을 4면에 모두 표현됐다. 상단석은 원형이며, 단판 16엽의 복련이 조식됐고 대좌의 형식은 고려초기부터 유행하는 양식이지만 별석이 아닌 일석으로 치석된 간략화된 상태여서 고려초기를 지나 11세기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의 특징들을 종합해보면 10세기 중반에 조성된 용주암 석조여래입상을 모본으로 10세기 후반 가덕사 석조여래입상을 거쳐 11세기 초반 미륵암 석불로 이어져 11세기 중반에 조성된 것으로 남원지역 불상의 계보를 확인하는 소중한 석불로 추정된다.
이번에 발견된 석불은 남원지역에서 유행했던 조각기법, 다채로운 옷주름의 표현, 발을 별조하여 끼우도록 한 점, 관능성을 강조한 점 등 남원지역의 전형적인 특징들이 잘 드러내고 있어 남원의 석불 전개과정과 조각술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남원문화원 김현식 사무국장은 "남원지역에 파악된 석불은 지정, 비지정을 합쳐 35개소, 47구로 우리나라에서 경주 다음으로 많아 남원이 불교문화가 찬란하게 꽃 피운 불국정토였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김 사무국장은 또 "현재 남원지역에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아 방치되고 있는 석불을 비롯 도난의 위험이 있는 많은 비지정 문화제에 대한 행정적 관리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