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파인) 최종민 기자 =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순신 장군은 한 명의 장수를 넘어 위기 속에서 떠오르는 정신적 지도자의 상징으로 자리해 왔다. 한산도대첩을 비롯한 명량, 노량의 해전은 단순한 승리를 넘어 국가 운명을 바꾼 분기점이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리더십의 본보기로 회자되고 있다.
김준권 박사(빛나사역사연구소)는 최근 칼럼을 통해 한산도대첩이 지닌 의미를 재조명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을 다룬 문학과 영화, 역사 서술의 흐름을 짚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길을 한산도의 푸른 바다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70년대 학교 운동장마다 세워졌던 이순신 동상은 세대를 관통하며 국가관을 형성한 상징물이었다. 그에게만 유일하게 붙는 ‘성웅(聖雄)’이라는 칭호는 전승 기록뿐 아니라 원칙과 겸손, 고결한 인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가된다.
이순신 장군을 다룬 대중문화도 한국사에서 중요한 흐름을 만들었다. 영화 <성웅 이순신>,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그리고 영화 <명량>, <한산>, <노량>으로 이어지는 작품들은 ‘신화적 영웅’을 넘어 ‘고뇌하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드러내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한산도대첩은 전략과 지략, 용기가 결합된 대표적 승리로 평가된다. 학익진 전술, 거북선 운용, 유인·포위 작전은 전쟁의 흐름을 뒤바꾸며 국가 재건의 기틀을 놓았다.
김 박사는 “이순신을 다시 소환해야 하는 이유는 압도적인 책임감에 있다”며 “백성을 향한 사랑, 리더의 고독을 견뎌낸 내면의 힘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진정한 영웅은 위기 속에서 나타나는 존재가 아니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사람”이라며 성웅 이순신의 정신이 오늘날에도 계속 살아 있다고 덧붙였다.

<원문>
한산도대첩: 불멸의 성웅(聖雄) 이순신
- 김준권 박사 (빛나사역사연구소)
이번 주제는 이순신과 한산도대첩입니다.
한반도의 역사에서 이순신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한 명의 장군을 넘어, 민족의 위기 때마다 소환되는 거대한 정신의 상징이다. 우리는 다시금 이순신을 부른다. 때로는 김탁환의 유려한 필치로 되살아난 '불멸'의 존재로, 때로는 김훈의 엄혹한 문체로 깎아낸 '고독한 인간'으로 말이다.
이광수가 일제강점기 민족의 사표로 세웠던 『이순신』이 민족적 자긍심의 씨앗이었다면, 박태원의 『임진조국전쟁』은 분단과 격변의 시대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민중의 항쟁 의지를 이순신의 궤적에 투영했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김탁환은 『불멸의 이순신』을 통해 이순신을 우리 곁으로 불러내어 뜨거운 피가 흐르는 영웅의 서사를 완성했고, 김훈은 『칼의 노래』에서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는 문장으로 죽음과 대면한 개인의 고뇌를 극한으로 몰아붙였다.
마지막으로 박은우의 『노량』은 죽음으로써 삶을 완성한 거인의 마지막 뒷모습을 장엄하게 그려내며 이순신 문학의 정점을 찍었다.
이 많은 작가가 이순신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생애 가장 찬란했던 승리, 한산도대첩의 그 푸른 바다 속에 우리가 잃어버린 '길'이 있기 때문이다.
1. 시대의 표상: 학교 운동장의 동상과 '성웅'의 의미
대한민국의 민주화 이전과 이후를 막론하고, 우리 세대의 기억 속 학교 운동장에는 언제나 한 분의 뒷모습이 서 있었습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전국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유행처럼 건립되었습니다. 짙은 녹색 혹은 구리색으로 빛나던 그 동상은 단순한 조형물을 넘어, 전후 복구와 국가 재건의 시대를 살아가던 우리에게 '나라를 지키는 마음'을 심어준 첫 번째 시각적 교과서였습니다.
그에 대한 호칭 또한 여타 위인과는 궤를 달리합니다. 세종대왕께 '대왕'이라 칭송하듯, 우리는 이순신에게만은 영웅을 넘어선 '성웅(聖雄)'이라는 칭호를 헌정했습니다. 이는 그가 남긴 23전 23승이라는 불패의 신화 때문만은 아닙니다.
철저한 원칙주의자로서의 면모, 자신의 공을 돌보지 않는 겸손함, 그리고 적군조차 경외하게 만든 인격적 고결함이 그를 성인(聖人)의 반열에 올린 것입니다. 한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을 때, 이순신이라는 이름이 늘 부동의 1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이처럼 그의 삶이 '사실적 업적'과 '문학적 숭고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2. 한국 영화사의 금기와 도전: 김진규에서 김명민 그리고 김한민까지
문화예술계에서 이순신이라는 주제는 오랫동안 '양날의 검'이었습니다. 모든 국민이 사랑하는 소재이지만, 그만큼 대중의 눈높이가 높고 재현하기 어려운 영역이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한국 영화의 거목이었던 배우 김진규는 사재를 털어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 영화 <성웅 이순신>(1971)과 <난중일기>(1977)를 제작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대규모 함선 세트와 수많은 인원을 동원한 대작이었으나, 결과적으로 흥행에 참패하며 제작사들이 파산의 길을 걷기도 했습니다. 이 사건은 충무로에 "이순신을 다루면 망한다"라는 징크스를 남겼고, 수십 년간 이순신은 스크린에서 금기시되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2004~2005)은 한국 영화계의 이순신 징크스가 깨지기 전, 안방극장을 통해 '성웅'의 존재를 대대적으로 부활시킨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약 100여 회에 걸쳐 방영된 이 대하드라마는 이순신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재조명하며 사회적 현상을 일으켰습니다.
이 드라마의 가장 큰 특징은 이순신을 범접할 수 없는 '신'의 영역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렸다는 점입니다. 완벽한 영웅이기 이전에, 어린 시절의 방황, 관직 생활에서의 좌절, 그리고 전쟁 중 겪는 두려움과 고독을 섬세하게 묘사했습니다. 배우 김명민은 처절할 정도의 몰입감을 선보이며 "이순신 그 자체"라는 찬사를 받았고, 이 작품을 통해 무명에 가깝던 배우에서 국민 배우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후 2014년, 김한민 감독은 영화 <명량>으로 이 징크스를 정면으로 돌파했습니다. 무려 1,761만 명이라는 전무후무한 관객을 동원하며 대한민국 역대 박스오피스 1위라는 기록을 세운 것입니다.
이후 <한산: 용의 출현>(2022)과 <노량: 죽음의 바다>(2023)로 이어진 '이순신 3부작'은 박제되어 있던 성웅을 현대적인 영상미로 부활시켰습니다. 김한민 감독은 단순한 전쟁 영웅이 아닌, 고뇌하는 인간이자 치밀한 전략가로서의 이순신을 입체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다시 한번 한반도에 '이순신 신드롬'을 일으켰습니다.
3. 한산도대첩: 지략과 용기가 빚어낸 압도적 승리
김한민 감독의 3부작 중에서도 특히 영화 <한산>이 조명한 한산도대첩(1592년 7월 8일)은 이순신의 군사적 천재성이 가장 빛난 순간입니다. 임진왜란 초기, 육전에서의 연전연패로 조선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을 때, 이순신은 바다에서 반전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첫째, 유인과 매복: 적장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정예 함대를 좁은 견내량에서 넓은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해낸 것은 고도의 심리전이자 지형지물을 이용한 지략의 승리였습니다.
둘째, 학익진(鶴翼陣)의 구현: 바다 위에 펼쳐진 거대한 학의 날개는 왜군의 돌진을 포위하고, 조선 판옥선의 강력한 함포 사격을 극대화했습니다. 이는 육지 전술을 해전에 완벽하게 이식한 혁명적인 시도였습니다.
셋째, 거북선의 귀환: 영화 속에서도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했던 거북선은 적진을 헤집으며 진형을 파괴하는 '돌격선'으로서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했습니다.
한산도대첩의 승리는 단순히 일본 해군을 격파한 것을 넘어,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전라도 곡창지대를 수호함으로써 전쟁의 양상을 바꾼 전략적 대승이었습니다.
4. 성웅의 향기: 다시 쓰는 이순신론(論)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 다시 이순신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가 가졌던 '압도적인 책임감'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임금의 시기와 조정의 모함 속에서도 오직 백성을 위해 싸웠습니다. 그가 난중일기에서 보여준 인간적인 고뇌, 어머니를 향한 효심, 그리고 부하들을 아끼는 마음은 그를 단순히 '싸움 잘하는 장군'이 아닌 '성웅'으로 부르게 하는 근거가 됩니다.
명량의 사투, 한산의 지략, 노량의 희생으로 이어진 그의 생애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어떠한 위기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상징합니다. 1970년대의 동상이 국가 중심의 통합을 상징했다면, 2020년대의 영화 신드롬은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자화상과 같습니다.
5. 불멸의 바다, 꺾이지 않는 마음
이순신 장군과 한산도대첩은 한국인에게 단순한 역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민족의 DNA에 각인된 승리의 기억이며, 도덕적 지향점입니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나이다"라는 그의 말은 400년이 지난 지금도 경제적, 사회적 위기에 처한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위로의 문장이 됩니다.
한산도의 푸른 파도는 오늘도 변함없이 흐르고 있습니다. 동상 속에서 묵묵히 서 계시던 장군님은 이제 영화와 문학이라는 파도를 타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그를 통해 다시금 깨닫습니다. 진정한 영웅은 위기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존재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성웅 이순신, 그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와 함께 거친 바다를 헤쳐 나가는 불멸의 지도자입니다.
빛나사역사연구소 김준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