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타파인) 김진주 기자 = 새로운 기업을 유치해도 시원찮을 판에 남원에서 20년 넘게 지역 제조업과 고용의 한 축을 담당해 온 CJ제일제당 남원공장이 결국 생산을 중단한다. 남원시민 110명을 포함해 인근지역 주민까지 230여명이 근무하는 사업장이어서 지역 고용과 인월면 상권에 미칠 충격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문제는 공장 하나가 멈춘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지역사회에서는 이미 한 달 전부터 ‘충북 진천 이전설’과 ‘폐업설’이 돌았다. 남원시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생산중단은 현실이 됐고, 이제 남원시는 230여명의 고용과 지역경제 피해를 최소화하겠다는 사후 대책을 내놓고 있다.
같은 시기 주력산업의 위기를 맞은 충남 당진시가 근로자 3516명을 대상으로 1인당 50만원을 지원하는 ‘버팀이음 프로젝트’를 선제적으로 가동한 것과 비교하면 남원시의 대응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철강업살리는 '버팀이음' 가동…당진시, 근로자 3,516명에 50만원 지원
| 20년 넘게 인월지킨 공장…10월부터 멈춘다
28일 남원시와 복수의 지역 관계자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경영상 어려움과 사업구조 개편에 따라 남원공장 주요 생산라인을 오는 10월 말까지만 운영한다.
일부 포장라인도 11월 말 운영을 종료하고 12월부터 공장 정리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남원공장은 인월산업단지 내 부지 2만9159㎡, 건물 2만3334㎡ 규모다. 면과 만두, 소스류 등을 생산해 왔다.
지난 2003년 영우냉동식품 공장으로 출발해 2018년 CJ제일제당이 이를 인수한 뒤 현재까지 운영됐다. 단순히 한 기업의 생산시설이 아니라 인월을 중심으로 한 동부권 지역경제에서 적지 않은 고용과 소비를 떠받쳐 온 사업장이었다.
현재 남원시민 110명을 포함해 인근지역 주민까지 23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저온·냉장면 시장 규모 축소와 판매 부진으로 적자가 이어지자 지난 3월부터 회사 전체 사업을 점검하며 생산시설 조정에 들어갔다. 남원공장도 이 과정에서 정리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 7월이전부터 이전설 돌았는데…결국 현실이 됐다
지역사회에서 CJ 남원공장의 진천 이전설이 확산된 것은 지난 7월이었다. 당시 직원들 사이에서는 충북 진천에 조성되는 생산시설로 기능을 옮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고, 지역사회에서는 사실상 폐업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왔다.
남원시는 공장을 직접 방문해 경영상황과 본사 움직임을 확인하고 공장 존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당시 남원시에 이전이나 폐업과 관련해 공식적으로 확정된 사실은 없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불과 한 달여 만에 주요 생산라인 중단과 공장 정리절차가 공식화됐다. 남원시가 물밑에서 본사와 접촉하고 공장 존치를 요청했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우려했던 상황을 막지 못했다.
물론 기업 사업장 정리나 생산시설 재편은 경영상 판단이다. 지방자치단체가 강제로 막을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그러나 기업의 결정을 막지 못한 것과 위기에 대비하지 못한 것은 다른 문제다.
| 당진 ‘위기 신호’에 먼저 움직였다
비슷한 시기 충남 당진도 지역 핵심산업인 철강업의 침체라는 악재를 맞았다. 철강 물동량이 감소하고 업황이 악화되면서 근로자들의 소득 감소와 고용 불안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당진시는 기업들이 문을 닫고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은 뒤 대책을 내놓는 대신 위기 징후 단계에서 움직였다. 충남도와 함께 고용노동부 공모사업을 통해 ‘버팀이음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지원 대상은 당진지역 500인 이하 철강업체 재직 근로자와 철강산업 물동량 감소로 소득이 줄어든 일용직·화물운송 종사자 등 모두 3516명이다.
이들에게 1인당 50만원의 모바일 지역화폐를 지급해 생활안정과 지역 소비를 동시에 떠받치는 방식이다. 신청 기간과 접수처, 지급시기까지 구체적으로 확정해 사업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
핵심은 지원금 50만원 자체가 아니다. 산업위기가 대량 실직과 지역 상권 붕괴로 이어지기 전에 행정이 먼저 위기를 인정하고 대응체계를 가동했다는 점이다.
| 남원시 ‘공장 존치 요청’…그다음 대책은 보이지 않았다
반면 남원에서는 지난 7월 이미 230여 명이 근무하는 사업장의 이전·폐업 가능성이 공개적으로 제기됐다. 시 역시 관련 사실을 인지하고 공장을 방문해 회사 관계자들과 접촉했다고 밝혔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대응의 차이는 분명하다.
당시 시민들에게 공개된 남원시의 대응은 사실관계 확인과 공장 존치 요청 수준에 머물렀다는 게 일부 지역사회의 평가다.
공장이 실제 멈출 경우 230여 명의 근로자를 어떻게 보호할지, 인월면 상권과 협력업체의 피해를 어떻게 줄일지, 비게 될 공장에 어떤 기업을 대체 유치할지 등 위기 이후까지 내다본 구체적인 선제 대책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결국 생산중단이 사실상 확정된 뒤에야 남원시는 직원들의 전환배치 여부와 지역 잔류 희망 인원을 파악해 취업상담과 구인기업 연계 등 맞춤형 고용지원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공장 부지 역시 장기간 방치되지 않도록 CJ 측과 매각·임대 등 활용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위기의 신호는 한 달 전부터 있었지만, 고용과 지역경제를 지키기 위한 구체적인 대응은 생산중단 결정 이후에야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결국 행정이 ‘공장을 지켜달라’고 요청하는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장이 멈추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동시에 준비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230명의 문제가 아니다...인월,남원 상권까지 '흔들'
CJ 남원공장 생산중단의 충격은 근로자 230여명의 숫자로만 계산하기 어렵다. 직원들이 지역에서 소비하는 생활비와 가족들의 소비, 협력업체 거래, 인근 음식점과 상점, 주거시장까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월은 남원 도심과 달리 대규모 고용 사업장이 전무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CJ 공장은 단순한 제조시설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한 명의 근로자가 빠지면 한 가구의 소비가 줄고, 수십 명이 떠나면 음식점과 상가 매출이 줄어들 수 있다. 수백 명 규모 사업장이 멈추면 지역경제 전반의 소비 흐름이 바뀔 수밖에 없다.
기업과 제조업 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남원에서는 이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 진천 전환배치냐 퇴사냐…직원 선택도 무겁다
이제 가장 시급한 것은 근로자 고용이다. CJ제일제당은 다른 지역 사업장에서 계속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직원에게 전환배치 기회를 최대한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지역에서는 충북 진천 등 타지역 사업장으로 이동하는 방안과 퇴사를 선택하는 방안을 놓고 직원들의 고심이 이어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타지역 근무가 어려워 퇴사를 선택하는 직원에게 1년치 임금 수준의 위로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협의됐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금액과 적용 대상, 지급 기준은 회사 측의 공식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위해 다른 지역 사업장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직원에게 전환배치 기회를 최대한 제공할 것”이라며, “타 지역으로 옮기기 어려운 직원에 대해서는 지역 내 재취업 연계와 경제적 지원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 텅 빈 공장…‘제2의 산업공동화’ 막아야
공장 정리 이후 부지와 시설 활용도 남원시가 풀어야 할 핵심 과제다. 시는 CJ 측에 공장을 장기간 방치하지 말고 다른 생산시설이나 사업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CJ제일제당도 매각과 임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활용 방안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단순 매각이나 임대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2만9000㎡가 넘는 부지와 2만3000㎡가 넘는 건물은 새로운 생산기업을 유치할 수 있는 기존 산업 인프라이기도 하다. 남원시는 공장이 장기간 비어 또 하나의 유휴시설로 전락하지 않도록 대체 기업 유치와 생산시설 재가동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CJ제일제당 남원공장에 그동안 투입된 각종 지방비와 행·재정적 지원도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공장 운영과 투자 과정에서 보조금이나 세제 혜택, 기반시설 조성비, 각종 기업지원금 등 남원시민의 세금이 얼마나 투입됐는지부터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지원 조건에 일정 기간 고용 유지나 사업장 운영 등의 의무가 있었다면 생산중단으로 반환 또는 환수 사유가 발생하는지도 살펴야 한다. 지원받은 기업이 지역에서 생산과 고용을 중단할 경우 어떤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지도 따져볼 대목이다.
다만 이를 곧바로 ‘윤리경영을 어긴 기업’으로 규정하려면 근거가 필요하다. 지원 당시 협약과 보조금 교부조건, 투자·고용 약속, 의무이행 기간 등을 확인한 뒤 약속 위반이 드러날 경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경영 문제까지 분명하게 물어야 한다.
결국 남원시가 해야 할 일은 공장 폐쇄에 따른 피해 수습에 그쳐서는 안 된다. ‘CJ에 시민의 세금이 얼마나 들어갔는가, 회사는 그에 상응하는 약속을 지켰는가, 돌려받아야 할 돈은 없는가’까지 계산서를 꺼내 들 때다.
| “기업 유치”보다 어려운 것…기존 기업 지키기
남원은 그동안 인구감소와 청년 유출을 막기 위해 기업 유치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주요 과제로 내세워 왔다.
하지만 이번 CJ 남원공장 생산중단은 새 기업을 유치하는 것만큼 기존 기업을 지키고 지역에 뿌리내리도록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보여준다.
기업유치 성과를 발표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이미 들어와 있는 기업의 경영 상황을 지속적으로 살피고, 위기 조짐이 보일 때 기업과 근로자를 동시에 지원하며, 철수가 불가피할 경우 대체 기업과 고용대책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진짜 기업정책이다.
남원시 관계자는 “남원공장 생산중단은 CJ제일제당의 내부 경영상황과 사업구조 개편에 따라 결정된 사안”이라며, “근로자의 고용불안과 지역경제 위축을 최소화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 적극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역사회가 남원시에 묻는 질문은 이제 하나 더 늘었다. “생산중단을 막지 못했다면, 적어도 한 달 전부터 무엇을 준비했는가.”
당진은 산업위기 징후가 나타나자 3516명의 생활안정과 고용유지 대책부터 가동했다. 남원은 CJ 남원공장 생산중단이라는 결과 앞에서 이제야 230여명의 고용과 공장 활용대책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기업의 경영 판단까지 행정이 책임질 수는 없다. 하지만 위기의 신호를 얼마나 빨리 읽고 어떤 대비책을 내놓느냐는 전적으로 행정의 몫이다.
CJ 남원공장의 생산중단은 기업 하나가 떠나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을 새로 데려오는 행정, 기존 기업을 지키는 행정, 그리고 위기가 닥치기 전에 주민의 일자리를 보호하는 행정이 무엇인지 남원시에 묻고 있다.
| 525억원이라도 있었더라면…기업 떠난 자리에 더 뼈아픈 ‘잃어버린 기회’
CJ 남원공장의 생산중단을 바라보는 지역사회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남원시의 재정과 정책 우선순위로 향한다.
특히 남원시는 모노레일 사업과 관련한 소송 패소로 5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재정 부담을 떠안았다. 만약 그 돈의 일부라도 기업 유치와 기존 기업의 고용유지, 산업단지 활성화에 전략적으로 투입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나올 수밖에 없다.
‘525억원이라도 있었더라면.’ 단순한 가정으로 흘려들을 이야기가 아니다. 기업의 경영 판단을 돈으로 무조건 막을 수는 없지만, 수백억원의 재정 여력이 있었다면 기업의 신규 설비투자를 유도하거나 대체 기업을 선제적으로 유치하고, 위기에 놓인 근로자들의 고용을 떠받치는 선택지는 지금보다 훨씬 넓었을 것이다.
더욱이 CJ 남원공장에는 남원시민 110명을 포함해 230여명이 일하고 있다. 공장 하나가 멈추면 230개의 일자리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가족의 생계와 인월 상권, 협력업체, 지역 소비까지 함께 흔들린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남원시 재정의 우선순위를 다시 묻게 한다. 지역소멸 시대 지방정부의 돈은 어디에 먼저 쓰여야 하는가. 보여주기식 시설인가, 아니면 기업과 일자리, 사람을 지역에 붙잡아 두는 데 쓰여야 하는가.
525억원이 다시 생길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돈을 떠올리게 만드는 CJ 남원공장의 생산중단은 남원에 더 뼈아픈 질문을 남긴다.
기업을 유치해도 시원찮을 남원에서 기업 하나가 떠나고 있다. 그 기업을 붙잡을 ‘돈’도, 떠난 뒤를 준비할 ‘시간’도 이미 우리에게는 충분하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