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타파인) 김진주 기자 = 볼링장은 하나뿐이다. 그런데 전국 정상급 실업선수들이 해마다 남원을 찾고, 영호남 동호인 300여명이 한꺼번에 모인다. 시설 숫자로만 보면 내세울 게 많지 않은 남원이지만 볼링만큼은 사정이 다르다. 한정된 시설을 알차게 활용하는 운영 능력과 탄탄한 동호인층이 ‘작지만 강한 볼링도시’를 만들어가고 있다.
남원시 숲 볼링경기장에서 지난 23일 ‘2026 영호남 생활체육 혼성2인조 볼링대회’가 열렸다. 영호남 지역 선수와 임원 등 300여명이 참가해 개인과 지역의 명예를 걸고 평소 갈고닦은 기량을 겨뤘다.
경기는 남녀 2명이 한 팀을 이루는 혼성2인조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번 대회에도 눈길을 끈 것은 운영 방식이다. 부부가 함께 출전한 팀과 두 사람의 나이를 합쳐 130세 이상인 팀에는 총점에 20점의 가산점을 줬다.
기량이 뛰어난 젊은 동호인만 유리한 경쟁에서 벗어나 부부와 중장년층까지 함께 승부를 즐길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춘 것.
단순히 순위를 가리는 대회가 아니라 세대와 지역을 연결하는 생활체육의 취지를 경기방식에 녹여냈다는 점에서 호응을 얻었다.
| 볼링장은 하나인데…동호인 180명이 한 대회에
남원 볼링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타 시·도의 규모있는 도시처럼 여러 볼링장이 경쟁하는 구조가 아니다. 사실상 숲 볼링경기장 한 곳을 중심으로 지역 볼링인들이 모인다.
한 곳에 동호인과 클럽, 협회의 역량이 집중되면서 오히려 남원만의 독특한 볼링문화가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지난 6월20~21일 열린 ‘2026 남원시장배 볼링대회’에는 선수 300여명과 임원·관계자 50여명 등 350여명이 참가했다.
특히 남원지역 선수만 180여명이 출전했다. 인구와 볼링장 수를 감안하면 지역 내 생활체육 볼링의 저변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다.
단순히 동호인 숫자만 많은 것도 아니다. 한 경기장을 중심으로 꾸준히 만나고 경쟁하면서 동호인들의 기량도 자연스럽게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여기에 각종 대회를 직접 치르며 쌓아온 경기운영 경험까지 지역의 소중한 자산으로 축적되고 있다는 것.
볼링장 하나로 이 같은 성과를 만들어내는 힘. 결국 시설 숫자의 열세를 사람과 실력, 그리고 운영의 묘미로 채워가고 있는 셈이다.
| 이길재 협회장 중심 ‘사람이 경쟁력’…대회 치르는 힘 축적
그 중심에는 이길재 남원시볼링협회장을 비롯한 협회 관계자와 지역 동호인들이 있다.
남원시볼링협회는 지역 생활체육대회를 운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국 규모 실업대회까지 맡으며 대회 운영 경험을 쌓아왔다.
특히 전국실업볼링대회는 남원시체육회가 주최하고 한국실업볼링연맹과 남원시볼링협회가 공동 주관하는 구조다.
대회 하나를 치르기 위해서는 경기 진행뿐 아니라 선수단과 레인 관리, 경기일정 조정, 심판과 관계기관 협업 등 상당한 운영 경험이 필요하다.
남원은 제한된 시설에도 이 같은 경험을 반복적으로 축적해왔다. 이길재 협회장을 중심으로 한 협회와 동호인들의 결집력이 남원 볼링의 또 다른 ‘시설’인 셈이다.
| 전국 25개 실업팀 280명…‘동네 볼링장’이 전국무대로
숲 볼링경기장의 또 다른 얼굴은 전국대회가 열릴 때 나타난다. 평소 지역 동호인들이 이용하는 생활체육 공간이 국내 정상급 실업선수들의 승부처로 바뀐다.
올해 7월7일부터 14일까지 8일간 이곳에서 ‘2026 남원 한국실업볼링연맹 전국실업볼링대회’가 열렸다. 대한볼링협회 공식 대회 일정에도 남원 숲 볼링경기장이 개최 장소로 등록돼 있다. 전국 25개 남녀 실업팀, 선수단 280여명이 남원에 집결했다.
개인전부터 2인조·3인조·5인조, 개인종합과 마스터즈까지 국내 실업볼링 최고 수준의 경기가 이어졌으며 5인조와 마스터즈 결승은 스포츠 전문채널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볼링경기장 하나가 지역 생활체육 공간과 전국 전문체육 무대라는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 것이다.
| 2024·2025·2026…전국대회가 계속 남원찾았다
전국실업볼링대회의 남원 개최는 일회성이 아니다. 대한볼링협회 기록을 보면 2024년 대회가 6월28일부터 7월5일까지 숲 볼링경기장에서 열렸고, 2025년에도 7월14일부터 21일까지 같은 장소에서 개최됐다. 올해 역시 7월7일부터 14일까지 남원에서 대회가 이어졌다.
한 번 대회를 유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 남원을 찾게 만드는 일이다. 남원은 전국 규모 대회를 지속적으로 유치하며 조금씩 ‘볼링도시’로서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전국대회를 꾸준히 개최하려면 경기시설은 기본이고 대회 운영 능력과 숙박·음식·교통 등 개최도시의 수용 여건까지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남원은 볼링장이 많아서 전국대회를 유치하는 도시가 아니다. 제한된 시설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쌓아온 경험과 신뢰가 다시 대회를 불러들이는 힘이 되고 있다.
하나뿐인 경기장을 최대한 활용해 ‘대회를 치를 줄 아는 도시’라는 경험을 쌓아온 것이다.
| 실업선수부터 영호남 동호인까지…한 레인서 이어지는 선순환
올해만 놓고 봐도 흐름이 뚜렷하다. 지난 6월 남원시장배에는 선수와 관계자 350여명이 참가했고 이 가운데 지역 동호인이 180여명이었다. 7월에는 전국 25개 실업팀 280여명이 남원을 찾았다. 그리고 8월에는 영호남 생활체육 동호인과 임원 300여명이 다시 숲 볼링경기장에 모였다.
지역 동호인 대회 → 전국 실업대회 → 영호남 생활체육 교류대회가 한 경기장을 중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전국 정상급 선수들의 경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환경은 지역 동호인들에게 자극이 되고, 탄탄한 생활체육 기반은 다시 각종 대회를 운영할 수 있는 힘으로 연결된다.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이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하나의 경기장을 매개로 선순환하는 구조다.
| 공 하나가 숙박·음식점까지…볼링도 ‘스포츠 관광’
대회 효과는 레인 위에서 끝나지 않는다. 수백명의 선수와 임원, 동호인이 남원을 찾으면 숙박과 음식점, 카페 등 지역 소비로 이어진다.
볼링은 특히 날씨의 영향을 적게 받는 실내 스포츠라는 장점도 있다. 폭염이나 비, 추위 등 계절적 변수에 영향을 받는 야외 종목과 달리 연중 대회 개최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광한루원과 지리산권 관광자원, 남원 음식문화와 대회 참가자들의 체류를 연결한다면 볼링 역시 스포츠마케팅의 한 축이 될 가능성이 있다.
양충모 남원시장은 이번 영호남 대회에서 “볼링은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는 생활체육으로 세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교류와 소통의 장을 만드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참가자들이 남원의 문화와 관광을 함께 즐기며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시설보다 먼저 만들어진 경쟁력
동호인층이 더 커지고 전국대회 유치가 늘어나면 시민 이용과 대회 일정이 겹치고 연습 공간이 부족해지는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다만 남원 볼링이 지금까지 보여준 성과는 스포츠 경쟁력이 반드시 시설 규모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좋은 시설을 갖추는 것 못지않게 그 시설을 누가, 어떻게 운영하고 채워나가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보여줬다.
이길재 남원시볼링협회장을 중심으로 한 협회와 동호인들이 모였고, 지역대회를 키웠으며 전국의 실업선수와 영호남 동호인까지 불러들였다.
시설은 하나지만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경기는 생활체육과 전문체육을 넘나든다. ‘볼링장이 몇 개냐’보다 ‘하나의 볼링장을 얼마나 잘 굴리느냐’. 작지만 강한 남원 볼링의 경쟁력은 어쩌면 바로 그 ‘운영의 묘미’에서 만들어진 건 아닐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