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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화 칼럼] 빛을 다루는 기술, 건축 유리의 진화

건축 유리의 역사적 변천과 기술적 진화

 

건축에서 유리는 오랫동안 ‘창’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단지 빛을 들이고 바람을 막는 보조적 재료에 머물렀다. 그러나 오늘날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면, 유리는 더 이상 주변적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건축의 표정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인류가 ‘빛과 공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해왔는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유리의 건축적 활용은 로마 시대에서 시작된다. 당시에는 녹인 유리를 틀에 붓는 ‘캐스트 글라스(Cast Glass)’ 방식이 사용되었지만, 불순물이 많아 두껍고 불투명했다. 외부를 조망하기보다는 실내에 희미한 빛을 들이는 수준에 머물렀던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빛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중세에 이르러 기술적 한계는 오히려 예술적 도약으로 이어진다. 대형 판유리 제작이 어려웠던 장인들은 작은 유리 조각을 납선으로 이어 붙였고, 이는 곧 스테인드글라스로 완성된다.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빛을 색으로 해석한 ‘공간 연출 장치’였다. 기술 부족이 상상력으로 보완된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유리는 본격적으로 산업화의 길을 걷는다. ‘크라운 유리(Crown Glass)’ 공법은 불어낸 유리를 회전시켜 원반 형태로 펼치는 기술로, 이전보다 훨씬 얇고 투명한 유리 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물론 중심부에 흔적이 남고 크기 제약이 존재했지만, 이는 대량 생산과 품질 개선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리고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에 등장한 수정궁은 건축사적 혁명을 상징한다. 조립식 철골 구조와 규격화된 유리를 결합한 이 건축물은 오늘날 ‘프리패브(Prefabrication)’ 개념을 선도적으로 적용했다. 공장에서 생산된 표준화 부재를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은 공사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고, 축구장 18개 규모의 건물을 단 9개월 만에 완공하는 기록을 남겼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하중을 철골 프레임이 담당하고 유리는 외피로 기능하는 구조 즉, 오늘날 커튼월(Curtain Wall)의 원형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이러한 흐름은 20세기 중반 ‘플로트 공법(Float Process)’의 등장으로 결정적 전환을 맞는다. 1952년 알라스테어 필킹턴이 개발한 이 기술은 녹은 주석 위에 유리를 띄워 굳히는 방식으로, 별도의 연마 없이도 거울처럼 평활한 유리를 생산할 수 있게 했다. 이는 대형 판유리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커튼월 시스템과 결합하여 현대 마천루의 탄생을 이끌었다. 건물의 구조체는 내부로 숨고, 외벽 전체가 유리로 덮이는 ‘완전 외피화’ 개념이 현실화된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유리 기술의 진화는 단순한 투명성과 구조적 역할을 넘어선다. 이제 유리는 하나의 ‘성능 재료’이자 ‘에너지 장치’로 기능한다. 대표적으로 로이(Low-E) 유리는 은(Ag) 코팅을 통해 적외선을 선택적으로 반사하여 실내 열 손실을 줄이고 냉난방 효율을 극대화한다. 또한 접합 강화 유리는 파손 시 파편 비산을 억제해 초고층 건물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다.

 

더 나아가 BIPV(Building Integrated Photovoltaics) 유리는 건물 외피 자체를 발전 설비로 전환한다. 특히 투명 또는 컬러 태양광 유리는 조망권을 유지하면서도 전력을 생산할 수 있어, 2025년 이후 확대되는 신재생에너지 의무화 정책 속에서 중요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 유리가 에너지 손실을 줄이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에너지를 ‘생산하는 외장재’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스마트 글라스 기술 역시 주목할 만하다. 전기 자극에 따라 투명도를 조절하는 일렉트로크로믹(Electrochromic) 유리는 외부 일사량과 온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며, 별도의 차양 장치 없이도 실내 환경을 제어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건물 에너지 소비를 최대 30% 이상 절감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여기에 투명 OLED와 미디어 파사드 기술이 결합되면서, 유리는 ‘정보 전달 매체’로서의 역할까지 수행하게 된다. 평소에는 투명한 창이 필요 시 고해상도 디스플레이로 전환되고, 향후에는 증강현실(AR) 인터페이스가 적용된 ‘스마트 윈도우’로 발전할 가능성도 크다.

 

이제 유리는 묻는다, “얼마나 투명한가”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다가오는 건축의 미래에서 유리는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게 될 것이다. 공간의 미적 완성도를 높이는 시각적 요소, 실내 환경을 제어하는 기능적 장치, 그리고 에너지를 생산하는 환경 인프라다. 이는 단순한 소재의 발전이 아니라 건축 패러다임 자체의 변화다.

 

돌과 벽의 시대에서, 철과 유리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지능형 외피’의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유리는 더 이상 비어 있는 투명체가 아니다. 그것은 도시와 인간, 그리고 환경을 연결하는 가장 정교한 경계가 되고 있다.

 

.글 양태화 건축사 (전북특별자치도건축사회/어울림 건축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