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파인 특별취재팀] 지렁이를 키우겠다던 농장이 수도권의 오니(하수 슬러지) 처리장으로 변질됐다.
악취는 마을을 뒤덮었고, 주민들은 한여름에도 창문을 열지 못한 채 병원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행정은 ‘몰랐다’, ‘확인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번 ‘오니 사태’는 단순한 환경 민원이 아니다.
주민의 생명과 지역의 존엄이 짓밟힌 구조적 실패의 기록이다.
타파인은 지난 두 달간 현장을 수차례 찾아 주민과 행정, 전문가를 심층 취재했다.
이 기사는 그 침묵의 대가가 어떻게 지역의 붕괴로 이어졌는가를 추적한 종합보고다.【특별취재팀】
‘지렁이 농장’의 배신…수도권 오니 처리장으로 변질
장수군 산서면 신덕길 일대가 악취에 뒤덮였다.
한때 ‘친환경 지렁이 농장’으로 홍보됐던 이곳은 지금,
수도권에서 반입된 오니(하수 슬러지) 처리장으로 변질돼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한여름에도 창문조차 열 수 없다.”
주민들의 절규는 단순한 민원을 넘어, 행정의 무책임과 구조적 부패를 고발하는 사회문제로 번지고 있다.
운영자는 “지렁이 사육이 어렵다”는 이유를 내세워 외부 오니를 반입해 건조·처리하며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에게 돌아갔고, (주민들에게) 장수군청은 “모르쇠식” 답변만 되풀이했다.
행정의 그림자…“묵인과 방조 의혹, 피할 수 없다”
문제의 본질은 장수군 행정의 관리·감독 실패다.
허가 목적은 분명 ‘지렁이 사육’이었지만, 실제 운영은 전혀 달랐다.
감독기관인 군청은 인허가 이후 현장점검을 사실상 방기했고,
주민들의 수차례 민원에도 “확인 중”이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주민 이모(60)씨는 “군청은 문제를 알고도 손을 놓았다”며 “행정의 무책임이 주민 피해를 키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일각에서는 “군 행정이 업자의 이해관계에 편승했다”는 묵인·방조 의혹까지 제기된다.
돈은 어디로 갔나…업자만 배불린 구조
수도권에서 반입된 오니는 그중에서도 악취와 오염도가 가장 심한 ‘최악의 오니’로 알려졌다.
수도권은 처리비를 절감하고, 사업자는 건조·재활용 과정을 통해 이익을 챙겼다.
그 사이 장수군은 ‘수도권의 쓰레기 처리장’으로 전락했다.
지역경제와 주민의 건강이 무너지는 동안,
행정은 어떤 제재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돈을 벌었지만, 피해는 오롯이 주민의 몫이었다.”
주민들의 목소리엔 배신감과 절망이 뒤섞여 있다.
“혈세, 주민 위한 것인가”
장수군이 지난 9월 5일
오니를 실은 대형 차량들이 드나들며 파손된 산서면 신덕길 농로를 복구하기 위해 군비를 투입해
긴급 포장을 실시했다.
문제는 이 도로가 애초 주민을 위한 길이 아니라,
수도권에서 반입된 오니 운반 차량들이 매일 오가는 통로였다는 점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업자들의 차량이 망가뜨린 길을 왜 우리 세금으로 고치느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결국 장수군의 이번 조치가 ‘주민을 위한 행정’이 아니라 ‘업자를 위한 혈세 낭비’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주민은 “피해자는 주민인데, 혜택은 업자가 본다”며 “이게 과연 군민을 위한 행정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숨 막히는 일상…악취에 무너진 건강
산서면은 이제 ‘냄새의 마을’로 불린다.
주민들은 악취 속에서 숨조차 쉬기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호흡기 질환과 피부 트러블로 병원을 찾는 주민이 급증했고,
고령층은 천식과 기침 증세가 악화돼 산소치료를 받는 사례도 있다.
상가 매출은 급감했고,
지역 농산물은 신뢰를 잃었다.
“집이 감옥 같다”는 절규는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주민의 분노, 결국 ‘현수막’으로 터졌다
지난 10월 19일, 장수군 곳곳에 현수막이 내걸렸다.
‘악취 방치하는 행정, 주민 건강은 누가 책임지나’,
‘악취에 숨 막힌다! 주민 건강 책임져라!’
산서면 주민자치위원회, 번영회, 체육회, 이장협의회가 이름을 올렸다.
이 현수막은 단순한 항의가 아닌, 행정 불신의 집단 표출이었다.
바로 그 시기, 장수군수는 ‘공공하천 셀프 허가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군민들 사이에서는 “군수가 군민 위에 군림한다”는 비판이 거세게 번졌다.
전문가들 “외부 오니 반입 전면 금지해야”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두고 “외부 오니 반입을 즉각 금지하고,
허가 목적 외 운영시설에 대한 전수조사가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환경전문가 A씨는 “지자체가 관리·감독 책임을 회피하면,
제2, 제3의 피해 지역이 반드시 생긴다”고 경고했다.
법률 전문가 또한 “허가 목적과 실제 운영이 다를 경우
허가 취소와 법적 조치가 가능하다”며 행정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했다.
“군림하는 권력, 침묵하는 행정이 만든 비극”
이번 사태는 단순한 환경오염이 아니다.
주민의 생명권·생활권, 그리고 지역의 존엄이 침해된 사건이다.
행정의 무책임이 쌓이고, 권력이 군민 위에 서는 순간
그 대가는 고통으로 돌아온다.
장수군은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주민의 호소에 응답하고,
책임 있는 대책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타파인 특별취재팀의 결론
‘지렁이 농장’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것은
행정의 무능과 구조적 부패의 민낯이었다.
주민이 떠나는 고향, 숨 막히는 마을은
변명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군수 군림하는 동안, 군민은 고통받았다.
타파인은 사태의 종결이 아닌 해결의 순간까지
현장을 지켜볼 것이며,
주민의 목소리가 행정의 책임으로 이어질 때까지
기록과 감시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